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전투 (문단 편집) ===== 512-522고지 지원 (기갑연대 소속 3대대) ===== 때는 중공군의 공격이 임박하기 직전인 13일 오후 9시 50분에 있었던 일이었다. 당시 연대장 최세인 대령은 제1대대OP가 있는 512고지 배사면에 집결시켜 놓은 예비 기갑연대 3대대를 출동시켜 주저항선의 약1km 후방에 떨어진 대대OP를 연하는 능선(512고지-522고지)에 제2저지선을 구축하도록 조치를 취했는데 기갑연대 3대대장 이준화 소령은 연대장의 명령에 수긍해 제 3대대 예하 제9중대를 1대대OP가 있는 512고지로 진출시키도록 명령을 내리고 제11중대를 512고지의 좌측방에 있는 522고지로 보낸도록 한뒤 1대대OP로 지프차를 몰아 떠났다. 그러나 11중대는 예정대로 522고지에 도착하였지만 1대대OP쪽으로 가던 제9중대는 가던 도중 중공군 대부대와 조우, 격돌하여 대부분의 장교가 전사하고 중대원은 분산되고 말았다. 이후 제3대대장 이준화 소령은 이들을 찾기 위해 고지에서 내려오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당시 9중대장이었던 이덕화 중위는 뒷날 이때의 정황을 알수있도록 증언록을 남겨 놓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대대장의 명령을 받는 즉시 TS-10으로 각 소대장을 불러 제1대대OP로 진출하도록 명령하였다. 출발 순서는 제2소대를 선두로 제3소대, 제1소대 순으로 하고 화기소대를 현지에 남겨 진지와 보급품을 경계하게 하였다. 그러나 막상 기동을 시작하자 , 중공군의 포탄이 점차로 많이 떨어져 각 소대의 진출이 늦어졌다. 그래서 나는 직접 연락병과 함께 선두로 나서 칠흑같은 야음의 우중을 헤치며 포탄이 작렬하는 산복을 타고 제1대대OP를 향해 나아갔다. 7부능선에 이르렀을 때 낙탄으로 나와 연락병이 부상을 입었다. 나는 복부에 파편을 맞았고 연락병은 다리를 다쳤다. 나는 위생병을 불러 응급처치로 지혈한 다음 중대의 기동을 계속 독려하였다. 이때 선임하사관 고순봉 이등상사로부터 '제2소대장 부상, 제3소대장 부상, 제1소대장 전사'라는 보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중대의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 셈이었다. >선임장교가 대책을 혐의하는 중에 중대의 취사 반장이 사색이 되어 달려오더니, 후방이 이미 중공군에게 차단되어 중대가 포위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사태가 결정적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곧 선임장교에게 '각 소대의 잔여병력을 수습한 후 중공군 포위망의 한곳을 돌파하여 결정하라'고 지시하였다. 수습된 병력은 통틀어 80명 정도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선임장교로 하여금 중공군의 포위망 돌파를 지휘하도록 하고, 나는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대CP가 있는 하동포 쪽으로 남하하였다. >나는 1km쯤 떨어진 길양편 능선위에서 중공군 기마병이 우리를 보고 사격을 가하여 중대가 분산된 그때부터 중대 주력에서 이탈되어 나 혼자 부상당한 배를 움켜 잡고 기다시피하면서 하진현을 향해 낮에는 아무데서나 자고 밤에는 걸었다. 여름철에 비를 맞았더니 상처가 이내 곪기 시작하였다. 철수 도중 두번이나 중공군에게 발각되었지만 상처가 곪아 썩는 것을 보더니 모두들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하여 3일만에 승암고개의 미 제3사단 지역으로 넘어와 생환하였다.'' 이와같이 당시 9중대의 상황이 정말 비참했다는걸 알수있으며 또 전반적인 상황과 각 역습부대의 전투경과가 어떠하였는지도 알수있다. 한편 일선의 1대대OP(512고지)에 있던 대대장 이중록 중령은 새벽 3시쯤 수화기를 들고 고립된 제2, 3중대장들과 함께 애국가를 애창하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장은 일행을 이끌고 대대장호와 전사면의 관측호를 연결한 유개교통호의 중간에 있는 통풍구 부근에 이동해 모여 있다가, 중공군의 파괴통 공격으로 기절하였다. 이후 대대장은 일출이 되고서야 깨어났고 깨어난 대대장은 김주안 상사(정보, 작전, 선임하사)와 무전병과 함께 서둘러 호에서 빠져나와 산 아래 개울을 건너 연대CP로 남하했고 남하 도중 낙오병력 150명을 추가로 수습해 연대 뒷산인 419고지를 건너 새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는 미 제3사단쪽으로 생환하였다. 한편 제1연대 좌일선에 배치된 3대대는 대대의 주저항선 전방에 흐르고 있는 남대천과 남대천 남안에 위치한 천연장애물 덕분에 초전에 중공군의 포격만 받았을뿐 보병공격은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10:20분이 지나자 중공군은 9중대 진지 정면에 중대규모로 출몰하여 보병공격을 감행했으며 이에 대대는 이들을 포격으로 격퇴시켜 버린다. 이후 중공군은 한 시간만에 반격해 들어왔으나 중대의 강력한 탄막사격 및 저지사격으로 이들 역시 모두 격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